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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 위기와 안남 등장

by infomoneymake 2024. 2. 27.

송나라의 위기 속에서, 1126년 금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송 황제는 포로가 되고, 여진족의 정권이 수립됐다. 이로 인해 안남(다이비엣)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지위로 등장하게 되었다. 1174년에 남송이 안남을 안남국왕으로 인정하면서, 다이비엣은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로서 중국과의 연계에서 자주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여진족의 금나라 침공

1125년, 여진족 출신인 니신불락이 중국 북부에 세운 금나라는 송나라에 대해 강력한 침공을 시작했다. 1126년에는 송의 수도인 변경을 점령하며 송 황제를 포로로 잡았고, 이후 1127년에는 금나라의 황제가 세워지면서 송나라는 북송과 남송으로 나뉘게 되었다. 금나라의 침공은 중국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되며, 여진족의 강대한 군사적 업적을 강조했다.

 

 

송나라의 북남 분리

1127년, 여진족 출신 니신불락이 세운 금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송나라는 북과 남으로 분리되었다. 금나라는 송의 수도 변경을 점령하고 황제를 포로로 잡아 북송과 남송으로 나누어, 이후 중국 역사상 '북송(北宋)'과 '남송(南宋)' 시대가 시작되었다. 북송은 지난 170여 년간 이어진 송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하며 중국 북부를 지배하고, 남송은 양쯔강 이남을 수도로 정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이 분리는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기억된다.

 

 

다이비엣의 독립 선포

다이비엣의 독립 선포는 10세기 초, 타이또(Le Thai To)에 의해 시작되었다. 1010년, 타이또가 리 왕조를 세우면서 다이비엣은 중국의 송나라에 속해 있었지만, 즉위와 함께 그는 독립을 선포하고 중국에 대한 종속을 거부했다. 타이또는 중국의 송나라에 대해 교지군왕(交趾郡王)으로 책봉받은 것을 거부하고 나라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는 '다이비엣'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이를 리 왕조의 수도로 선포하여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 독립 선포는 다이비엣이 베트남 역사상에서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후 다이비엣은 계속해서 중국의 침입과 영향력에 맞서 싸워나가면서, 독자적인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 나갔다. 타이또의 독립 선포는 베트남 역사에서 극적이고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안남 국왕으로의 승격

1174년, 남송(南宋) 황제가 안남(安南)의 다이비엣 군주를 국왕으로 승격시켰다. 이는 군왕(郡王)에서 국왕(國王)으로의 승격을 의미하며, 이로써 다이비엣은 베트남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송나라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된 국가로서의 정식 지위를 획득했다. 남송은 다이비엣에 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면서 국왕의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서 다이비엣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승격은 다이비엣 역사상 큰 의미를 지니며, 안남(安南)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면서도 다이비엣이 독자적인 나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중국의 영향 아래에서 교지군왕(交趾郡王)으로 책봉받는 등 종속적인 지위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왕의 지위는 다이비엣의 독립성을 상징하며 중국과는 대등한 독립국가로써 인정되었다. 안남 국왕으로 승격된 국주는 독립 국가로서 다이비엣의 지위를 높이고 국제적인 신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다이비엣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자주적으로 외교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